-
[비공개] 내가 꿈꾸는 죽음
60세까지는 살고 싶다. (물론 더 오래 살면 좋지만, 일차적바람이 60세까지는 사는 것이다. 희망 최고령은 87세다.삶의 후반부를 함께 살아온여인과 함께 같은 날에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바람과 87이라는 숫자는 너무이상적이어서이렇게 괄호 안에다 묶어둔다.) 화장을 하여 가루가 된 유골은 병산서원 앞 낙동강에 뿌려졌으면 좋겠다. 그 날, 낙동강변에는 비발디의 곡을 재해석한 막스 리히터의 이 흘렀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하고아껴준 이들이 열 명은 되었으면 좋겠다. 죽은 후 영혼의 눈으로강을 따라 안동, 김천, 대구를둘러보고 싶다.바다에 이르면 영혼의 눈도 감았으면 좋겠다.단 하루도 아프지 않고 죽으면 좋으련만, 그런 축복이 나를 찾아줄지는 미지수다. 외할머니는 딸의 묘에 갈 때마다 이리 말씀하신다. "내가 너무 오래 사네. 영화야, 나는 ..추천 -
[비공개] 희망과 낙관만으론 부족하다
물비늘로 나를 반겨준 공천포 앞바다무작정 제주에 왔다. 편도 항공편으로, 숙소 예약도 없이. 불안한 마음은 없었다. 성수기가 아니니 숙소는 수두룩했고 렌터카 하루 이용료는 백반 값보다 저렴했다. 이번 여행은 첫째 날 점심 약속 하나를 제외하면 아무 일정도 없다. 계획된 일정이 없을 뿐이지, 어딘가가 나를 부를 테고, 나는 무언가를 하면서 지낼 것이다. 서귀포시와 남원읍 사이에 위치한 공천포 식당에서 모듬물회를 먹었다. 소라와 전복이 들어간 물회는 상큼하면서도 신맛을 잘 먹지 못하는 내게도 맛났다. 식사는 세 명의 여인과 함께했다. 제주에 사는 와우팀원, 그녀를 찾아온 인도네시아에 사는 또 다른 와우팀원 그리고 엄마를 따라 하늘을 날아온 예쁜 아이였다. 우리는 창밖으로 바다가 내다보이는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추천 -
[비공개] 비전과 목표가 중요한가
“비전이나 목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카페에서 커피잔을 들며 옛 직장 선배가 물었다. 얼마 전 이 질문을 주제로 50분짜리 특강을 했었다. 자신 있는 주제였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었다. 의견을 나누어야 할 여러 주제가 있었다.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 존재했지만, 질문을 던지는 선배의 표정이 진지했다. 나는 장광설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며 정성을 다해 짧게 답변했다. “비전과 목표의 장점은 분명하죠. 에너지를 한 방향으로 집중할 수 있고 낭비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잖아요. 하지만 목표 지향적인 삶은 환경 변화에 둔감하고 외부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어요. 헨리 민츠버그는 의도적 전략(Deliberate Strategy)과 창발적 전략(Emergent Strategy)이란 개념으로 ‘계획적인 삶’과 외부 환경에 기민하게 ‘대..추천 -
[비공개] 다시, 행복유통업자 되기!
서른여섯 살 때의 일입니다. 운전 중에 친구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날의 통화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주로 농담조로 이뤄지는 우리의 통화인데, 그 날 친구의 목소리는 유난히 차분했습니다. 친구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습니다. “일단은 너만 알고 있어라. 내가 몸이 많이 안 좋네. 나도 이겨내려고 노력할 텐데…… 암일 수도 있단다.” “병원에서는 뭐래?” 친구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고, 나는 화를 내면서 다그쳤습니다. 한참 후에나 대답을 들었죠. “췌장암일 가능성이 있다는데, 정확한 건 큰 병원에 가야 알 수 있다네.” 1990년부터 이십 오년 동안 우정을 이어온 절친한 친구가 췌장암일 수도 있다는 말은 나를 충격에 몰아넣었습니다. 통화를 끊고 나서 꺼이꺼이 울었습니다. 22년 전에 세상을 떠나신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학교 수업 도..추천 -
[비공개] 아뿔싸! 또 글이라니!
느닷없이 핸드폰 전원이 꺼지곤 한다. 37개월째 사용하고 있는'갤럭시노트3'얘기다. 증상이 나타난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금방 다시 켜진다면일시적 현상이라 여기겠지만, 한 번은대여섯 시간 동안 켜지지 않았다. 조바심이나 걱정은 없었다. 이내 다시 켜질 것 같았고,켜지지 않더라도 데이터는 구할 거라고 생각했다. 영원히 사망하더라도 문제될 건 없다.최근에 찍은 사진들과 핸드폰으로 주고받았던인간관계의 흔적들이 아쉬울 뿐. (노트북과 두 번 결별한내게는 경미한 사태다.) 아직은 휴대폰을 다시 살 생각이 없다. 최소 6개월, 최장 1년은 더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열흘 전엔 폴리카보네이트 소재의 핸드폰 케이스를 구매했다(사용하던 짙은 파란색 케이스는 봄과 여름용이었다). 가격은 2,500원! 1만원이어도 이 케이스를 선택했을 만..추천 -
[비공개] 눈이 밝아지고 깨어 있다면
지난 주 수요일 이후(10.26)부터 오늘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일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관련한뉴스 시청이었다. 세월호 참사 때처럼 내 일상을 잠식했다. 날마다 놀랐고, 밤마다 내일을 희망했다. 희망은 번번히 깨졌다. 검찰은 귀국한 최순실에게 31시간의 자유 시간을 주었고,청와대는 사태의 본질을 헤아리지 못했다. 오늘(11.04)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담화(전문 클릭)는 허망함의 백미를 장식했다. 취임 하시기 전부터 이미 대통령의 인식 능력을 기대하지는 않았으나, 오늘 담화는 나의 낮은 기대마저 박살냈고, 주도적이지 못한 화법은 복장을 터지게 했다. "국가경제와국민의삶에도움이될것이라는바람에서추진된일이었는데그과정에서특정개인이이권을챙기고여러위법행위까지저질렀다고하니너무나안타깝고참담한심정입니다." "저..추천 -
[비공개] 심장의 두근거림을 듣는 독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들의 책만큼은 읽으며 살아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매년 독서 목록이 쌓여간다.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수상자의 작품을 다 읽을 수도, 읽을 필요도 없지만) 수상자들이 100명을 넘어선 데다 다작하는 작가도 많다. 반면 나는 1인 독서가이고, 읽는 속도도 느려 터졌다. 이것은 자기비하나 체념이 아니다. 정확한 현실 인식이다. 독서 목록이 쌓여가는 원인은 또 있다. 나의 문학 사랑이 스스로 기대하는 만큼 깊지 않을 가능성! 나의 일상을 돌아보면 문학보다 사랑하는 것들이 많음이 분명하다. 문학보다 더 많은 시간을 주고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말이다. 문학을 제외하고서도 명저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문학만을 사랑하기에는 독서 욕심이 너무 많다. 나의 문학 사랑의 깊이 역시 현실 인식이다. 현실 인식은 종종 자..추천 -
[비공개] 해결
[짧은 소설]K는 중고 믹서기를 2만원에 팔았다. 물건을 건네며 K가 말했다. “날이 여전히 날카로워서 어떤 과일이나 채소도 곱게 잘 갈려요.” 물건을 구매한 사람은 자신의 기대만큼 날이 날카롭지는 않음을, 이튿날 당근을 갈면서 알았다. 갈리긴 갈렸고, 불편하진 않았다. 아쉬움이 찾아든 것은 뚜껑이었다. 흘림 방지용 고무패킹이 조금 헐거웠다. 믹서기 용기를 거꾸로 뒤집으니 내용물의 수분이 약간씩 새어나왔다. 믹서기를 뒤집어 사용할 일은 없지만, 조금은 불만족스러웠다. 환불을 요구하거나 불만을 제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세하고 정확한 공지의 중요성을 느꼈다. 다른 중고 매매자를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었다. 예전 같으면 이런 일로 전화하는 일은 없었다. 상대에게 폐를 끼치거나 갈등이 일어날 만한 일은 모조리 피하려는 그였다..추천 -
[비공개] 어기적거리며 걷고 있다면
“두목 당신은 말이오. 당신 나름대로 먹는 걸 하느님께 돌리려고 애를 쓰는 것 같소만 그게 잘 되지 않으니까 괴로운 거예요. 까마귀에게 일어났던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겁니다.” “까마귀에게 일어난 일이라니, 그게 뭡니까, 조르바?” “말씀드리지요. 원래 까마귀는 까마귀답게 점잖고 당당하게 걸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이 까마귀에게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려 보겠다는 생각이 난거지요. 그날로 이 가엾은 까마귀는 제 보법을 몽땅 까먹어 버렸다지 뭡니까, 뒤죽박죽이 된 거예요. 기껏해야 어기적거릴 수밖에는 없었으니까 말이오.” - 『그리스인 조르바』(p.100) 조르바가 자기다움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까마귀가 비둘기처럼 거들먹거렸다”에서 중요한 대목은 ‘거들먹거림’이 아니다. 거들먹거리든,..추천 -
[비공개] 비즈니스 석을 예매했다
크레타행 에게항공(Aegean Airlines)은 본의 아니게 비즈니스 좌석으로 예매했다. 이코노미 석이 없었고, 비즈니스와 이코노미의 가격이 비슷했다(3만 5천원 차이). 비즈니스 탑승권을 살펴보았다. 이름부터 달랐다. ‘탑승권(Boarding Pass)’이 아니라 ‘탑승/ 라운지 이용권(Boarding / Lounge Pass)’이었다. 이런 문구도 보였다. “We are pleased to invite you to our lounge prior to the departure of flight." 나를 라운지로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라운지가 어디에 있지? 단 한 번도 비즈니스 석을 구입한 적은 없다. 누군가가 나를 비즈니스 석이나 일등석의 세계로 초대한 적도 없다. 이왕이면 라운지에서 탑승 시간을 기다리고 싶었다. 나는 라운지를 찾아 나섰다. 탑승권을 보여주고 면세점 거리로 들어섰다(우리나라는 수하물 검사를 하고 나야 면세점인데, 아테네 공항은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