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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별일은 없어. 그냥, 슬퍼서.
슬퍼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카페에 잘 앉아 있다가, 동생에게 용돈을 보내고서, 운전 하다 만난 석양에, 울컥 치미는 슬픔 불쑥 쏟아지는 눈물 홀로 가눌 길 없어 전화로 친구를 찾는다. “……” 석아, 석아! 무슨 일 있나? “슬퍼서.” 힘겹게 대답하고서 다시 흐느낀다. 삶이 소중한 이유는 언젠가 끝나기 때문이라는데, 그것은 또한 삶이 한없이 슬픈 까닭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이 슬픔에도 익숙해지겠지. 그 날이 너무 멀지 않기를. 억지로 앞당기지도 말기를. #. 친구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오늘 아침엔 6월 이전의 날들이 떠올랐다. 6월엔 정말 최선과 정성을 다했지만, 그 이전에는 그렇지 못했다. 친구가 온전히 말을 할 수 있었던 그 때, 그럭저럭 함께 다닐 수 있었던 그 때에 시간을 ..추천 -
[비공개]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다
#. 7월 5일 토요일 17시 정각, 병원에 도착했다. 내가 도착하기 직전, 친구는 진정제를 맞았다. 금요일부터 꼬박 하루 동안 의식이 깨어 있었던 친구는 토요일 오후가 되면서부터 고통이 심해졌다. 그럴 때엔 진정제 없이 고통을 견디기 힘들다. 친구가 진정제를 맞는다는 것은 고통을 경감시키는 대신에 사람들과 대면할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친구 아내는 최대한 진정제를 늦게 맞게 하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자기 남편이 마지막으로 사람들과 조금이라도 더 대면하기를 원하는 마음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 친구는 이제 막 진정제를 맞고 잠들었다. 의식을 잃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수씨가 말했다. “미안해요. 5시에 오는 줄 알고 있었지만, 오랫동안 깨어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실로 아쉬웠지만, 그녀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추천 -
[비공개] 아산병원 주요 면회일지
6월 9일(월) 비보(悲報)는 불청객처럼 찾아든다. 석촌호수 어느 카페에서 와우팀원과의 미팅 중 전화벨이 울렸다. 친구 아내였다.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길어야 두 달! 그녀가 흐느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눈앞에서 친구와 함께 보냈던 25년의 주요 장면들로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주변을 밝히던 조명이 모두 꺼지고, 나만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 순간 세상엔, 할 말을 잃은 한 남자만이 존재하는 듯 했다. 병원에 갔다. 친구 아내는 의사가 했던 말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그녀는 이라고 쓰인 간호 차트도 보았단다. CPR은 심폐소생술을 뜻한다. 이젠 위급해도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좀 더 연장하는 것이 환자의 고통을 더할 뿐 더 이상 의미가 없단다. ‘아! 올 것이 왔구나.’ 이 사실을 어떻게 친구에..추천 -
[비공개] 친구야, 내 마지막 부탁이다
오전에 사무실 정리를 하고, 시간절약을 위해 짜파게티를 끓여먹고서 오후 2시 열차를 탔다. (짜파게티는 두어 달에 한 번씩 먹는 별미다.) 열차에서 오늘 친구에게 전할 말을 생각했다. 어제 의식이 돌아왔고, 오늘 면회를 온 이들도 알아본단다. 작은 기적이 일어난 셈. (이미 5일 전, 병원 측에서는 이제 의식이 못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했었다.) 무슨 말을 하나? 가장 행복했던 추억과 사랑한다는 말은 이미 아산병원에서 했다. 대구의료원에 와서는 고맙다는 말도 했다. (그때 친구는 “내가 더 고맙지”라고 했었다.) 녀석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나? 생각하고 옛일들을 떠올려도, 없다. 친구로 지내는 동안 녀석에게 잘못한 일이 없고, 병을 앓은 동안에는 정성을 기울였다. 최근 2년 동안, 친구는 자신의 불찰이 빚어낸 불행으로 인해 괴로워했다. ..추천 -
[비공개] 눈물 바다
눈물 바다 바닷가 벼랑 끝 끼욱끼욱 갈매기 울음 니도 우나 나도 운다 삶의 끝자락에 선 내 친구도 운다 백두산 눈물샘이 그다지도 크더니 사람들 눈물 모여 바다가 되었구나 #. 슬픔이 시가 되었다.언젠가 친구가 떠나면, 그 바다에 갈 때마다 친구가 생각날 것이다. 그리움과 슬픔이 일상을 불쑥 불쑥 침투할 것이다. 이미 겪어봐서 안다. 사별이란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일상을 어떻게 침투하고 슬픔이 어떻게 나를 감싸는지 안다. 알아도 대책은 없다. 그래서 두렵다. 그렇게 될날들이.추천 -
[비공개] 면회에 관하여
몇 번이나 아산병원을 다녀왔을까? 얼추 계산해도 60~70회다. 한번 면회에 길게는 대여섯 시간 이상 있기도 했으니, 참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낸 셈이다. 배우고 느낀 게 많을 수밖에 없다. 생각하며 사는 이들에겐 체험하는 시간 자체가 선생이니까. #. 면회 목적도 다양하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환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위로파)과 체면 때문에 발걸음 하는 사람들(체면파). 위로파들은 다시 안절부절형와 실속형으로 나눠진다. 안절부절형은 무언가 돕고 싶은데 어찌할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이다. 보는 이에 따라서 조금은 호들갑스럽게 느껴진다. 실속형은 도움을 주기 위해 미리 조사하고 준비하여 환자나 보호자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 체면파, 다시 말해 체면을 위해 병원을 찾는 이들의 특징은 삶과 면회..추천 -
[비공개] 소소한 일상 들여다보기
1. 롯데마트 입구에 진열된 행사 매대 앞을 지날 때였다. “좋은 행사에 참여하는 거라 저희가 싼 가격에 내어드리는 거예요”라는 말이 들렸다. 약장사 같지 않은 점잖은 목소리였지만, ‘왠지 모르게’ 진정성이 느껴지진 않았다. 왠지 모르게? 정말 몰라서 한 소리다. 말투만으로도 진실과 과장을 잡아채는 감각이 생긴 것인지 혹은 오늘따라 내가 회의적이어서인지. 그게 아니라면, 그가 유달리 들통 날 법한 어조였는지 혹은 좋은 행사와 싼 가격이라는 말이 진실인지. 나는 그가 판매하는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다. 행여 내게 필요한 물품이어다고 해도, 오늘만큼은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판단은 이성이 아닌 감정의 산물이리라.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거짓된 선전도 어떤 기능을 해낸다.’ 스스로 ..추천 -
[비공개] 어떤 언어를 잘하고 싶나?
1. 칸트냐, 헤겔이냐? 오래 묵은 질문이다. 사유하는 힘을 키우기 위해 사숙하고 싶은 철학자들이 있다. 니체는 다른 철학자와 사상적으로 양립할 수 있다. 칸트를 택하든, 헤겔을 택하든 니체는 계속 읽어갈 것이다. 칸트와 헤겔은 선택을 강요한다.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저들을 알지 못하니 선택할 수 없다. 이제 칸트와 헤겔을 공부할 때가 왔다. 피상적이나마 철학사를 살폈고, 스스로 끌어올린 화두도 품었으니. 2. 젊은 날에 어학 공부를 해 두지 못한 것이 아쉽다. 앞으로도 종종 아쉬워할 것이다. 그만큼 아쉬움이 크다. 하지만 아직 내가 젊다는 사실도 안다. 심정으로는 이십대보다 나이가 많다는 사실에 더욱 눈길이 가지만, 이성으로는 남은 인생의 가장 젊을 때가 지금이라는 사실에 주목한다. 십년 후엔 삼십대 후반을 그리워할..추천 -
[비공개] 아직 나는 실감이 안 난다
1. 7시에 눈을 떴다. 숙모는 어젯밤부터 내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시는 눈치다. 아무래도 아침 식사는 집에서 해야 할 것 같아 둘러가는 동선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갔다. 피곤한 내게는 밥보다 잠이 필요했지만, 숙모의 애정을 뿌리칠 수도 없었다. 집에 가서 밥상을 받으니 ‘잘 왔구나’ 싶었다. 나를 위해 몇 가지 반찬을 마련하신 것. 난 숙모가 좋다. (요즘 나답지 않게, 다시 말해 연락을 좀처럼 하지 않는 못된 습관을 이겨내며 매주 연락을 해서일까.) 이유야 어찌됐든 숙모를 생각하면... 효도하고 싶고, 이야기 나누고 싶고, 키워주신 은혜에 보답하고 싶다. 올해 안으로 용돈 100만원을 안겨 드리겠다는 바람은 꼭 실천해야겠다. 돈이 전부가 아니지만,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 - 성경, 마태복음 6:21 이리 말하면, 돈이 나의 보..추천 -
[비공개] 피곤과 슬픔이 뒤범벅이 되어
1. 오늘은 중요한 일정이 많았다. 밤새 준비하느라 새벽에 1시간 30분만을 자고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얼른 일을 끝내고 호스피스 병동에 있는 친구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했지만, 함께 일하는 이들에게 티를 내고 싶지도 않았다. 내게는 친구지만, 그들에겐 타인이다. 어느 정도 배려는 해 주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두 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니 저녁 여섯 시였다. 대구행 7시 열차를 기다리며 기차역에서 빵으로 저녁을 해결했다. (식사는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지만, 요즘엔 어쩔 수 없다.) 안도감도 잠시, 열차 안에서는 ‘마음편지’를 써야 했다. 잠이 몰려왔지만, 퇴고까지 마음을 기울였다. 2.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넋을 잃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두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