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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내면일기
[짧은 소설]그녀는 자주 자신의 내면을 성찰했다. 마음을 살피어 반성했고 신경 쓰이는 일들은 며칠에 걸쳐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들여다보아 발견한 것들을 날마다 기록했다. 내면일기라 부를 수 있을 법한 그 기록물들은 꼼꼼하고 상세했다. 찬찬히 살피면 그녀 기분의 부침이 그래프로 드러날 정도였다. 기록은 사실이나 논리를 체계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 같은 마음의 움직임에 의해 작성되었다. 때로는 자신의 실망스러운 행동에 짜증을 냈고, 왜 그리 되었는지 알아내기 위해 마음의 심연 속을 헤매고 다녔다. 때로는 반복되는 패턴에 스스로를 경멸하기도 했다. 그녀는 다른 이들의 말에 지나치게 예민했다. 나에 대한 다른 이들의 오해는 불가피한 인생의 일면임을 인식하지 못한 채, 누군가의 평가가 조금이라도 엇나간다 ..추천 -
[비공개] 독서, 짧은 소설 & 5.18
1. 어제는 5월 18일 35주년 기념일이었다.나는 궁금하다.매년 5월 18일이 되면, 그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호기심이기도 하고, 역사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대학생이었을 때에는 매년 이 날을 기념했다. 5월 18일 전날부터 덩어리 시간을 내어 5.18 자료를 찾기도 했고, 관련 영상을 보기도 했다. (기억이 맞다면) 강준만 선생의 『리영희』에서 기술된 설명이 내가 읽은 가장 충격적인 묘사들이었다. 언젠가부터 5월 18일이 되어도 나는 다른 일들로 바빴다. 홀로 묵념하는 것으로 간.단.히. 지나치고 만다. 이것이 나만의 모습이면 좋겠다. 지금도 여전히 대학생들과 시민적 지식인들은 이 나라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불러들이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전파하는 일을 계속해 주기를, 말로만 이렇게 부끄럽..추천 -
[비공개] 어느 날 문득 꽃이 피었다
[짧은 소설] 오래 전, 집 앞 꽃집에 갔다. 작은 꽃이 든 화분을 하나 사 왔다. 나는 꽃 이름을 잊었고, 화분이 놓인 곳은 어지러웠다. 가지각색의 화분이 나란히 놓인 것도 아니고, 화분 주변을 깨끗이 정돈하지도 못했다. 책과 종이 자료가 쌓인 데다 필기구와 메모지가 흩어져 있는 책상 위에, 화분을 놓아둔 것이다. 일상에 작은 생기를 더하기 위함일 뿐, 꽃이 자라날 만한 환경이나 책상 정돈에 대해서는 무지했고 무심했다. 어머니께서 보시고서 “이렇게 책상이 지저분한데 화분이 있다고 뭐가 달라지긴 하니?”라고 물으셨다. 핀잔이 아닌 호기심이었다. 22년 동안 키웠다는 이유로, 아들을 다 안다고 여기지 않는 점이 어머니의 훌륭함이다. 변화를 궁금해 하시고 작은 노력에도 기대를 가지신다. “꽃처럼 아름답게 살려고요.” 꽃이 아직 피지도 ..추천 -
[비공개] 국사와 세계사 공부 순서
내 나라 역사인 한국사를 먼저 공부하고 나서 세계사 공부를 이어가는 게 올바른 순서지.” N이 말했다. 애국주의자나 민족주의자가 아니더라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고 일견 옳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관점일 뿐이다. “세계사를 먼저 공부하고 나면 내 나라 역사를 보다 객관적으로 알게 되고, 세계 역사의 교훈을 새기며 한국사를 공부하는 동안 나라의 미래상을 모색할 수 있다”고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의견이 옳은가? 이리 물을 필요는 없다. 저마다 나름의 유익이 있고 모두 나름의 이치에 맞으니까. 이런 경우엔 지속성과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한국사를 먼저 공부하든, 세계사를 먼저 공부하든 어느 것 하나를 마치고서 공부를 끝낼 게 아니라 다음 공부를 이어가는 지속성 그리고 자신이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았는지를 분별하는..추천 -
[비공개] [reverse] 성찰일지 (1)
1. 5월 2일, 번개처럼 내 독서에 전환점이 일어난 날! 나는이 날을 계기로 내 인생에 반전(reverse)을 만들고 싶었다. 단박에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아마도2014년~2015년을 내 인생의 침체기로 회상할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긴 하지만 - 나는 그 어떤 충격에도 삶을 탕진하거나 우울함의 구덩이에 빠지는 말아야 한다고 언젠가 굳건하게 생각했었다 - 좀처럼 열정적인 모습을 내 하루하루에 분출하지는못하면서 8개월여를 지냈다.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지만 내가 달라진다면, 마치 새로 태어난 것처럼(rebirth) 새로운 기운으로 살아간다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 작은 것 하나부터 확실히 잡자고 생각했다.간단하면서도 작은 일, 이를테면 책상정리, 화장실 청소,노트북 폴더 정리, 핸드폰 사진 정리와 같..추천 -
[비공개] 수잔 손택 강독회 안내
2015년 5~6월,다섯 번에 걸쳐'수잔 손택 강독회'를 진행합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20세기 최고의 비평가'는 수잔 손택, 롤랑 바르트 그리고 발터 벤야민입니다. 정치나 사회 영역까지 넓히면 에드워드 사이드를 빼놓을 수 없지만, 제 공부의 일차적 단계는 문학과 예술이기에, 문예비평가로 저 세 사람의 글을 좋아합니다. (문예비평가라는 말은 쓰이지 않는 말이나 손택은 영화와 연극을, 벤야민은 사진까지 다뤘으니 문학비평가라고 하엔 부족합니다.롤랑 바르트는 프로레슬링까지 다뤘으니 문화비평의 모델을 보여 주었고요.) 손택의 글은 쉽게읽힙니다.비평가들의 현학적 표현을 생각하면 가독성은 엄청난 능력이고 매력입니다. 손택의 글은 문학, 연극, 영화, 사진을 넘나들기에, 그녀를 따라가다보면, 문학을 필두로 한 예술 전반에 대해 깊은 ..추천 -
[비공개] 돌연한 출발이 필요할 때
누구나 기회를 만나지만, 모든 이가 기회를 잡는 것은 아니다. 특히 준비되지 못한 이들에게 기회는 그림의 떡이다. 그렇기에 어떤 기회는 (기회가 아니라) 그저 유혹이다. 준비가 기회를 만나는 것이야말로 멋진 일이다. 준비가 기회를 붙잡을 테니까. 준비가 완벽을 예비하고, 준비가 여정을 즐기게 함을, 나는 명심하고 있다. 동시에 잊지 말아야 한다. 완벽이든 즐거움이든 길 위에서 완성되는 것임을. 그러니 때로는 돌연하게 출발해야 한다. 나는 ‘세심이 잉태한 돌연’을 찬양하지만, 인생의 변화와 도약을 위해서는 때때로 돌연히 떠날 줄도 알아야 한다. 오래 정체한 이들은 결국 떠날 때를 만난다. 목표를 모르고 일용의 양식을 준비하지 못했더라도, 떠나야 할 때를! 떠남 자체가 목표인 여행인데 목적지를 몰라 당황하는 이들은 얼마나 어리..추천 -
[비공개] 세월과 한 평의 공간
시간은 사람을 바꾼다. 어떤 이에게 아침은 생기를 준다. 어떤 이에게는 저녁이 그렇다. 월초에 힘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월말이면 열정적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다. 월초와 월말 모두 삶의 기운을 내는 이들도 있다. 내가 그렇다. 한 달의 시작 시기나 마무리할 즈음에 나는 삶을 돌아보고 힘을 내고, 이런저런 시간마다 긍정적 영향을 받는다. 2015년 5월 2일 새벽이 그랬다. 나는 새벽 2시에 일어나 오전 10시까지 공부했다. 오롯이 한 작가의 책을 읽었다. (수잔 손택의 에세이 다섯 편이다.) 시간은 나를 매혹했다. 시계를 확인할 때마다 2시간, 3시간씩 지났다. 오랜만의 경험이었다. 지난해를(2014년) 힘들게 보냈다. 우정, 성취, 사랑을 상실했고, 그때 충격이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에는 유실한 노트북 데이터로 고통스러웠는데, 요즘엔 세상을 떠난 ..추천 -
[비공개] 저물어가는 햇살은
저물어가는 햇살은 반년 만에 친구를 만나니 6개월 전 내 모습이 보였다 반년 동안 이룰 것을 다짐하던 지금보다 조금은 젊었던 나 미루고 또 미루는 고질병에 세월이 끝없으리라는 착각까지 뜨거움도 결실도없는 삶으로 친구 앞에 뻔지르하게 섰다 세월은 구름처럼 흘렀건만 웅덩이에 고여 있었던 나 다짐은 바람처럼 사라졌고 4월 햇살이 밝아 민망했다 그 누굴, 그 무엇을 탓하리 처음엔 친구에게만 부끄럽더니 이내 만물을 쳐다보기 힘들더라 저물어가는 햇살이, 빛났다 *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기뻤다.우리는 밝은 햇살처럼 웃었고, 맛난 식사만큼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다. 나는 이번 만남 때까지 해내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부끄러웠지만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다.눈 앞에 선 친구와 생각을 주고 받으며 대화를 나누는 시간에 나만의..추천 -
[비공개] 수양을 추구하는 사람들
서애 류성룡 선생의 옥연정사 (안동 하회마을) 1. 주말에 안동 옥연정사에 다녀왔다. 서애 선생은 임진왜란의 기록을 담은 제132호 국보『징비록』을 '옥연정사'에서 썼다.정사 출입문 앞에 서면 낙동강과하회마을이 보인다. 부용대와 함께 하회마을 전경을즐기기에 맞춤한 장소다. 정사에 들어서기 전 낙동강을 내다보니, 잠시 휴식하면서 강 너머 고향 마을을 바라보는 서애 선생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아름다운 고향과 전란의 비참함이 대비되면서, 『징비록』 집필에 박차를 가하셨으리라. '다시는 이런 전란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야.' ('징비'는『시경』 소비편 "나는 지난 날을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予基懲而毖後患)"에서 따온 구절이다.) 2. 퇴계 선생은 61세가 되어서야도산서당을 완공했다. 학문을 연마하고 자연을 감상할공간을 마련하..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