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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상업과비평사
[짧은 소설] 우신경은 국내 굴지의 문학상은 물론 해외 문학상까지 수상한 일급의 소설가다. 그녀의 대표작 『문학을 부탁해』는 15개 언어로 번역됐고 국내에서는 문단을 대표하는 출판사 ‘상업과비평사’에서 출간됐다. 찬란한 인생에 변고가 생겼다. 우신경의 소설에 표절이 의심되는 대목을 조목조목 밝힌 T의 글이 세상에 알려졌다. 표절 시비가 처음은 아니었지만, 문예지가 아닌 온라인 매체를 통해 발표된 글이라는 점과 대상이 문단의 대표 주자라는 점 탓인지 논란은 삽시간에 번졌다. 우신경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문제되는 작품을 모른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표절을 전면 부인했다. 상업과비평사도 우신경을 옹호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일상적 소재이고 작품을 ..추천 -
[비공개] 전문가처럼 마니아처럼
점점 애착이 사라진다. 물건 하나를 더 가지면 무엇 하나, 성취 하나를 더 이룬들 무엇 하나 정도였던 무상함이 최근 더욱 짙어져서 사랑 한들 무엇 하나, 행복하면 무엇 하나 정도의 감정에 이르렀다. 누군가의 염려나 조언 없이 자가진단만으로도 내 마음의 건강이 나빠졌음을 느낀다.나의 상태를인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정도는 아니나,모든 정신이방향성을 갖고 발전한다는 점에서는 주의해야 한다. * 나는 이제, 애착과 초연의 변증법까지 배우려나 보다. (많은 이들은 애착이 많아 초연을 익혀야겠지만, 나는 반대 상태가 되었다.) * 10기가 마지막일 것 같은 불길한 느낌, 잠시라도 떠날 것만 같은 묘한 예감, 이 모든 것을 떨쳐내고, 애착을 가져야 한다. 사람, 일상, 사물에게. * 생각할 거리도 많고, 애도해야 할 사건도 존재한다. 게다가 ..추천 -
[비공개] 연못
[짧은 소설]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상수는 과장스럽고 성급하게 반응한다. 모든 이에게, 재빨리, 화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라도 지닌 듯이. 어떤 이가 “미처 일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지난달에 바빴습니다.”라고 말하면, 상수는 그의 바빴다는 말이 끝맺기도 전에 “바쁘셨으니까”라고 메아리처럼 화답한다. 어느 날, 상수는 고객과 부동산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누가 보아도 60대 중반으로 볼만한 노인이었다. 대화 도중 노인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를 끊은 노인이 “아까 말한 그 친구예요”라고 말하자, 상수는 노인의 말을 쫓았다. “아! 양평에 계신 분이요?” “아니 화곡동 친구.” “아! 골프장에 같이 가셨다는.” “그래요.” 상수의 퀴즈 맞추기식 대화가 아니었다면 불필요한 대화들이었다. “제가 거래 때문에 ..추천 -
[비공개] 사랑의 사생아
[짧은 소설]경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개인교습을 하는 첼리스트다. 아이들의 재능을 발견하여 맞춤 교육을 잘 하기로 유명했다. 아이들의 성장 속도를 인내심으로 지켜볼 줄도 알았다. 그래서인지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이웃집 엄마들보다 현명했다. 앞집 엄마는 딸을 학원에 보냈다. 행여 자신이 다른 엄마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옆집 엄마도 딸을 학원에 보냈다. 엄마라면 마땅히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고 믿었고, 학원을 보내는 일은 그 중 하나였다. 경숙 역시 딸을 학원에 보냈다. 딸이 원했기 때문이다. 경숙의 딸 지영은 학원 수업을 즐거워했고 곧잘 배웠다. 엄마의 직감으로 딸의 열심을 느끼고 있던 경숙에게 학원 선생님이 지영의 남다른 재능을 전하자, 경숙은 욕심이 생겼다. 딸의 필요로 시작된 학원 수업이지만 경숙은 어..추천 -
[비공개] 진정성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시인 김남주는 단 두 편의 시로 나를 사로잡았다.주말에 도서관에 왔다. 창비시선집을 쭈욱 살핀 것은 김남주 시인을 읽기 위함이었다. 그에 대해서는 모르는 바도 아니고, 상세히 아는 바도 아니다. 노동과 투쟁의 살려고 애썼던 저항시인임을, 그의 시들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음을, 문학평론가 염무웅 선생이 그의 작품들을 살뜰히 모아 전집으로 간행했다는 사실 정도를 알고 있던 터였다. 나는 본격적으로 김남주를 읽을 것인가를 가늠하기 위해 『사상의 거처』를 뽑아 들었다. 창비시선 100번째 시집이었다. 시집에 실린첫번째, 두번째 시의 제목이 반갑다. 어쩌면 두 편의 시로 이 시인과 나와의 궁합을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제목은 '시에 대하여' 그리고 '예술 지상주의'!여기 한 시인이 있다. 그에게시란 무엇인가를 이해하면 그 시인..추천 -
[비공개] 손택 두번째 강독회 후기
1. 강독회 둘째 시간에는 열 페이지를 읽었다. 강의실 앞에 선 선생으로서 내가 할 일은 중용의 도를 찾아가는 일이다.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압박으로 설명 없이 읽어나갈 수는 없고, 너무 많은 설명으로 진도가 지나치게 느려서도 안 된다. 설명이 부실하면 강독회에 참석하는 의미가 희석될 테고, 진도나 너무 느리면 자칫 지칠 수가 있다. 내게 필요한 것은 감수성과 목표의식! 청중이 고개를 갸우뚱 한다 싶으면 쉽게 설명하고 모두들 이해한다 싶으면 머릿속에 설명이 떠올라도 생략하는 감수성과 수많은 지식과 정보 중 우리 텍스트의 이해를 돕는 지식에 집중하는 목표의식, 이 두 가지를 항상 염두하자. 2. 강독회는 즐겁다. 이미 읽었던 텍스트인데, 강독회에서 읽으면 미리 생각하지 못했고 준비하지도 않았던 설명들이 떠오른다. 집중해서..추천 -
[비공개] 메르스
[짧은 소설]메르스 감염자가 25명으로 늘었다. SNS를 통해 확인되지 않은 예방 대책이 나돌았다. “코에 바세린을 바르면 괜찮아.” “사람들 많은 곳에 가지 마. 마스크 꼭 쓰고.” “손을 열심히 씻어야 합니다.” 세화는 은근히 걱정이 되어 남자 친구 영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기야, 메르스가 호흡기 질환이라 바이러스가 코 속으로 들어와 감염될 수 있는데 바세린을 발라놓으면 이 녀석이 메르스 바이러스를 몸 속으로 안들어가게 딱 잡아 준대. 지용성이라. ^^ 나는 바르고 나왔어.”곧장 답변이 왔다.“우리나라 감염자가 지금까지 20명(?)이라는데, 5천만이 넘는 우리나라 인구에 비하면 극히 소수야. 차라리 나는 오늘 밤 움직일 때 교통사고를 걱정할래.” 영수의 머릿속에는 어제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확인한 교통사고 부상자 수가 떠올랐..추천 -
[비공개] 손택에 대해 묻고 답하다
다큐멘터리 리뷰 (2/2)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같은 인물을 좋아하는 이들끼리의 정서적 공감대가 느껴졌지만(신형철의 책 제목이기도 한 ‘느낌의 공동체’라는 말이 어울렸다), 관객들끼리 활발하게 여담을 나누기에는형식과 공간이 주는 무게감이 컸다. (콘서트나 상영회에 적합한 의자 배열도 정중한 분위기에 한몫 했으리라.) '관객들과의 대화' 시간은 주로 관객이 질문하고 사회자(사회학자 노명우 교수)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두 권의 손택 책을 옮긴이(김선형 교수)가 간간히 유익한 설명을 덧붙였다. 사회자와 생각이 다른 일부 독자들은 넌지시 자기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여러 의견이 어우러져 손택 이해에 도움을 준 시간이었다. 나 역시 사회자와 다른 생각을 가진 대목이 많아 마음속으로 대답을 정리했다..추천 -
[비공개] 다큐멘터리, 손택에 관하여
다큐멘터리 리뷰 (1/2) 1. 마음산책, 참 고마운 출판사다. 손택의 인터뷰 집 『수잔 손택의 말』을 출간하더니 이번에는 출간을 기념한 다큐멘터리 상영회라니! 손택에 관한 다큐멘터리이 존재는알고 있었지만, 미국 아마존에서도 DVD 판매는 없어서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터라(Audio CD만 있어서 구입을 미루고 있었다), 상영회 소식은 무척 반가웠다.한글 자막으로 이번 상영회를 준비했으니, 반갑고고마울 수밖에. (참고로, 마음산책 출판사는 ‘마음산’과 ‘책’으로 떼어 읽는 게 설립 취지에 맞지만, 마음 + 산책으로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을 터이고, 나는두 표현이 모두 마음에 든다.) 다큐멘터리를 본 직후에는 소감이 여러 가지였지만, 열흘 남짓 지나니 증발한 생각들이 많다. 조금이라도 더 기억을 회상해 볼 요량으로 글렌 굴드의 연주곡을..추천 -
[비공개] 계승
[짧은 소설]세탁소에 여인이 들어왔다. 하얀색 이불을 테이블에 무성의하게 올려두면서 세탁소 주인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금방 하나 더 가져올게요.” 잠시 후 여인은 커다란 검은색 천을 한 손에 들고 돌아왔다. 세탁소 주인이 받더니 “천이네요?” 라고 물었다. “네, 여기 어디 한쪽에 브랜드가 있는데” 하면서 여인은 족히 5m가 넘는 천을 이리저리 펼쳤다. 곧 “Westcock"라고 크게 쓰인 문구가 드러났다. “(브랜드를 가리키며) 페인트로 찍은 건지 잘모르겠는데, 이거 손상 될까요? 그러면 안 되는데.” 주인은 브랜드를 손으로 만지더니, 문제 될 것 같다며 “집에서 솔로 지저분한 부분만살살 문지르는 게 낫겠는데요”라고 말했다. “싫어요, 회사 거란 말예요.” 그렇잖아도 부드러운 주인의 말투인데 그 부드러움이 더욱 도드라질 정도로,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