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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또 하나의 빈곤
경험은 놀랍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경험하는 것들이 늘어날수록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하는 관용을 품게 된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영역도 실제로 경험하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경험은 관점을 변화시킨다. 또한 경험은 앎을 이해로 바꾼다. 체험이 못하는 일도 척척 해낸다. 우리 사회는 체험과 경험을 어느 정도 구분하여 사용한다. 체험(體驗)은 몸 ‘체’자를 쓰는 한자어다. 몸으로 잠깐 겪어보는 일이 체험이다. 체험은 일시적이고 가상적이다. 예전 TV 프로그램 중 방송인들이 노동 현장에 가서 일일 근무를 했던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를 두고 ‘경험’이 아닌 이라 부른 것은 정확한 용법이다. ‘가상현실 체험’이지 ‘가상현실 경험’이라 부르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추천 -
[비공개] 어느 자격지심자의 고백
- 2015년 11월 07일 나는 자격지심이 심한 사람이다. 목표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면 달성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의 목표를 모조리 공유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무엇보다 달성 못할까 부끄러웠고(걱정을 사서 하다니!), 나의 사적 영역을 남겨 두고 싶기도 했다(대단한 것도 없는데!). 목표는 내게 자극을 주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자기경영을 추동하는 글에서 목표를 여러 밝히긴 했지만, 일부의 것을 숨겼다. 날것 그대로가 아니었다. 글을 공개하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쓴 글을 A, B, C로 구분하여, 주로 B급을 공개한다. 포스팅과 마음편지 용의 글들이다. A급은 집필용이다. 처음부터 세상에 내 놓을 요량으로 썼거나, 쓰고 나니 매우 마음에 드는 글이 된 경우다. A급은 ‘언젠가’ 책으로 출간할 글들이다(망할 놈의 ‘언젠가병’). 내..추천 -
[비공개] 이해가 찬탄을 부른다
이해가 찬탄을 부른다- 『그리스인 조르바』 독법 하나 순진한 이상주의자는 어두운 현실을 곧잘 외면한다. 꿈을 추구하다가도 현실적인 문제가 나오면 절망하거나 힘들어한다. 이상성을 실현하지 못한 채로 현실에 눈을 감아버림으로 이상성을 유지하는 자들이다. 지혜로운 이상주의자는 진흙투성이 현실 속에서 이상의 꽃을 피워낸다. 경멸스러운 현실이더라도 직면하여 그 속에서 삶을 일군다. 조르바는 자신의 두 발을 땅에 붙이고 있는 이상주의자다. 『그리스인 조르바』의 화자는 사람 볼 줄을 알기에, 조르바의 위대함을 발견하고 매료된다. 사람을 믿어야 하는가. 조르바와 ‘나’는 이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 '나'는 자신에게 고용된인부들을 이해하고 애정하려고 애썼다. 갈탄광이 성공하면 그들과 형제처럼 지내려는 계획도 세웠다...추천 -
[비공개] 성찰과 피드백
[짧은 소설] 시험 문제가 너무 어려웠다. 불성실하게 준비한 학생과 열심히 노력한 학생의 점수 차가 크지 않았다. 선생은 ‘불성실’에게는 훈계를, ‘노력’에는 칭찬을 전해야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험 문제의 변별도가 떨어진데다가 불성실한 학생과 노력한 학생들로 구분되기보다는 한 학생에게 불성실과 노력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결국 선생은 한 명 한 명에게 칭찬과 훈계를 모두 주었다. 스스로를 성찰하여 노력했던 대목은 기뻐하고 부족했던 점은 반성하기를 바랐다. “성찰할 때 성실한 대목마저 싸잡아 자격지심의 재료로 삼지 마세요.” 선생의 의도와는 달리, 학생들은 타고난 기질대로 칭찬과 훈계 둘 중 하나만 받아들었다. 시험 준비에 불성실했던 학생, 자격지심을 주된 정서로 느끼는 학생, 어렸을 때부터 잘했다는 말을 충..추천 -
[비공개] 욕망이 소멸되는 시간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찢긴 구름은 천천히 대지 위를 달리며 그림자를 대지 위에 부드럽게 드리우고 있었다. 한 떼의 구름이 하늘 저쪽에서 일어났다. 태양이 구름 뒤로 들어갔다 나옴에 따라 대지의 표정은 살아 있는 얼굴처럼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곤 했다.”(p.39)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다가 만난 구절이 1박 2일 영주로 다녀왔던 가을 여행을 상기시켰다. ‘아! 이번 여행에서는 가을 하늘 한번 쳐다보지 못했구나.’ 나는 15명이 함께 떠난 여행의 가이드였다. 후속 일정을 생각하고, 시간을 조율하고, 사람들을 챙기는데 관심을 두느라 홀로 느긋한 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이것은 아쉬움이 아니다. 나의 정열의 부산물이었다. 홀로 떠나는 여행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다르다. 홀로 떠난 여행은 사유할 시간을 듬뿍 품에 안는다. 머리가 맑아지고..추천 -
[비공개] 일하는 베짱이, 조르바
"처음부터 분명히 말해 놓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요. 분명히 해둡시다.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에요. 결국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p.24) 『그리스인 조르바』의 초반부에 나오는 말로, 조르바가 새로 만난 주인과 나눈 대화입니다. 많이 회자되는 구절이죠. 특히 다음의 짧은 물음과 답변은 강렬한 울림마저 줍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소설 속 화자는 조르바를 처음 만난 날에 단박에 매료되었습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푸짐한 언어를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추천 -
[비공개] 새 출발을 위한 책읽기
1.“저는 올해 생일날 다시 태어났어요. 이 마음을 기념하기 위해 읽을 만한 책이 있을까요?” 와우팀원의 물음에 나는 그에게 맞춤한 다섯 권의 책을 추천했다. 한두 권이 아닌 다섯 권이나 된 까닭은 ‘알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내 고질병이 도진 결과였다. 꼭 다섯 권을 읽어야 재탄생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단 한 권만, 아니 단 한 페이지로도 누구나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변화와 도약은 책읽기가 아닌 결심으로 이뤄지니까. 결심만으로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단호한 결심 없이는 꾸준한 실천도 없다. 2. 나도 추천한 책들을 읽고 싶어졌다. 자기 상황에 맞는 책읽기는 독자를 더 멋진 삶으로 인도한다. 그런 독서는 마다할 이유가 있을까. 이라는 컨셉으로 오직 나를 위한 목록을 선정했다. 목록이 처음에는 다섯 권이었지만, 한 권으로 줄..추천 -
[비공개] 아카이브로 날아갈 책들
나의 장서는 양평 아카이브와 동교동 서재에 나뉘어져 있다. 장서의 90%가 아카이브에 있고, 내 생활의 중심은 90%가 동교동에서 이뤄진다. 읽을 책들을 실어오고읽은 책들을 실어가는 일이 자연스러운 내 일상 중 하나가 되었다. 일상의 일면을 들여다본다. 군더더기를 없애 효과성과 효율성 모두를 높이고 싶어서다. 일상과 몸매는 군더더기가 없을수록 아름답다. 1. 여행서 두 권 올해 가을에 일본에 갈 뻔했다. 실행되었더라면, 오랜만에 둘이 떠나는 해외 여행이었다.내겐 둘이 떠나는 여행이 가장 드물다. 연예인처럼 밀월여행을 떠날 수도 없고, 결혼한 친구랑 떠나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이다. 실행한다면 아마 그의 아내가 나를 싫어하게 될 것이다. 국내 여행을 둘이서 다녀 온 적은 네번이다. 친구 P와 포항, 친구L과 제주, 와우팀원 K와구..추천 -
[비공개] 그윽한 인생을 만드는 단어
1. 이해(理解)는 중요한 단어다. 이보다 중요한 단어가 있을까 하는 생각될 정도다.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하는 것, 깨달아 알아서 받아들이는 것! 이해의 사전적 정의다. 앎과 이해는 다르다. 그저 '아는 일'이 앎이라면, 이해는 시간 또는경험과 함께 온다. 다시 말해, 이해는 실천적 앎,세월을 켜켜이 축적한 앎이다. 이해야말로 지혜롭고 그윽한 인생의 핵심 키워드다. 2. 이해는 인간관계의 갈등과 누군가를 미워할 때 느끼는괴로움을완화시켜 준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을경멸한다. 괴테의 말이다.말을 뒤집어도 멋진 교훈이 된다. 이해하면 경멸하기 힘들어진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고상하지만쉬이 실현하기 힘든 이상적인 조언이다. 인격적 성숙이 요구되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내게는 다음과 같은 말들이 현..추천 -
[비공개] 양평 아카이브에 대하여
스무살이 되면서부터 내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주 책을 읽었고, 돈이 생길 때마다 책을 샀다. 때때로 책 구입비가버는 돈을 초과하기도 했다.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3~4천 권의 책을 소장하게 되었고, 취업하고 수입이 늘면서 책 구입에 들어가는 돈도 규모가 커졌다. 장서가1만 권에 이르고부터는 책 구입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20일이 지나고 있는 이번 달에도 구입한 책은 딱두 권이다. (한병철『에로스의 종말』, 아도르노 『계몽의 변증법』) 적지 않은 장서는 골치 아픈 문제를 동반한다. 장서의 보관 말이다. 장서는 자신이 머물 공간을 요구한다. 습기가 많으면 안 되고, 바닥이 튼튼한 공간이어야한다. 장서의 공간은 곧 비용이다. 열렬한 독서가로 산다는 것은 결국 얼마간의 비용을 지불하는 일이다. 책 구입비와 장서의 공..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