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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데보라 레비Deborah Levy가 이야기하는 다섯 권의 책
이젠 습관이 된 탓에시간의 여유만 생기면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글들을 수시로 프린트해서 읽는다. 며칠 전에 읽은 인터뷰에 몇 권의, 인상적인 책 소개가 있어옮긴다. 다소 생소한 작가들의 이름이 눈에 띄었고, 내가 미처 몰랐다는 사실이 다소 미안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당신의 침묵은 당신을 지켜주지 못한다'라는 메시지로 사회 참여를 강하게 외쳤던 오드리 로드, 영국 출신이면서20세기 초반 초현실주의 세례를 받은 화가이자 소설가 레오노라 캐링턴은 국내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였다. 셜리 잭슨은 이미 많은 작품이 영화화되기도 한, 고딕 호러 분야에 있어선 최고의 소설가였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 데보라 레비는 흥미로운 작가들과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녀도 이미 영국의 부커상 최종 후보로 여러 번 올리기도 한 극작가이..추천 -
[비공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소장품 기획전La Collection De La 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2017. 5. 30 - 8. 15, 서울시립미술관현대미술의 흥미로운 장면을 보여준 전시였다. 특히 차이 구어치앙(Cai Guo-Qiang)의 거대한 작품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화약을 이용하여 제작된그의 작품은 현대 미술가들이어느 정도까지 매체와 표현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가를 정직하게 보여 주었으며, 그러한 고민이현대미술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음에 대한좋은 예시가 되었다. (아래 동영상은 차이 구어치앙의 작업 방식에 대한 영상물이다)Cai Guo-Qiang, 2007, gunpowder on paper, mounted on wood as six-panel screen, 233 x 463.8 cm, 2007, courtesy of the artist. Photo: Hiro Ihara이불의 작품 는 구시대의 흔적을 드러내면서 그 당시의 고문, 억압, 자유의 박탈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점에서 상당히 정치적인 ..추천 -
[비공개] 일요일 오후 사무실
주말 난지캠핑장에 갔다. 동네 지인들과 함께 간 곳은 잠을 자러 온 곳이라기 보다는 술을 마시러 온 공간 비슷했다. 사진 속으로 보이는 공간들은 모두 잠을 잘 수 있는 곳이긴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바닥이 흙먼지로 쌓여 있었다. 몇 번을 닦아냈지만, 계속 흙이 묻어나와 불편했고 결국 아침까지 술을 마시다가 집에 올 수 밖에 없었다.밤바람이 다소 시원해진 탓에 즐거운 한 때를 보내긴 했지만, 토요일은 종일 잠만 자는 불상사가....토요일 잠에서 깨어 창 밖을 보니, 어둠이 내려 앉은 도시의 풍경이 들어왔다. 매번 보는 풍경이라 익숙하지만, 이 풍경도 보지 못하면 꽤 보고 싶을 지도 모르겠다. 하긴 매일 바다를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아직도 나는 바다 앞에 가서 살고 싶은 바람을 버리지 못했다.일요일 오후에 사무실에 나와 작성 중이..추천 -
[비공개] 자정의 퇴근길
자정이 지난 지하철 9호선.선정릉역에서 김포공항역으로 달려가는 급행.신논현역.즐거운 유흥을 끝낸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수다를 나누며 등장.자신의 취하고 지쳐보이는얼굴 사이로 피어나는 웃음의 어색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지하철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별안간 낯설게 여겨졌다.실은 요즘 내 모습에 스스로 상당히 낯설어 하곤 있지만, 어쩌면 나이 들면 갑작스레 이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집으로 가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나오자, 거리엔 사람들이 없었고 택시마저 보이지 않고,대신 밤을 지키는 술집들이 나를 향해 손짓을 했다.다행이다.밤을 지키는 술집들이 있다는 건. 어쩌면 아직 살만한 곳임을 알리는 징표 같은 게 아닐까.수백년 전 밤길을 가던 나그네의 눈에 비친 주막의 불빛처럼, 그렇게.찰칵.새로 바꾼 핸드폰으로 찍은 사..추천 -
[비공개] 어빙 펜Irving Penn의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
어빙 펜(Irving Penn)의 사진을 자주 보았지만(그만큼 유명한 탓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전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전형적이라고 여기게 된 것은 어빙 펜 이후의 많은 패션 사진 작가나 사진기자들이 어빙 펜의의 사진을 따라하였기 때문임을.최봉림의 글을 읽으면서 어빙 펜과 함께, 어빙 펜이 찍은 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새롭게 알게 되었다기 보다는 아마 관심에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데이비드 스미스에 대해서. 회화에 잭슨 폴록이 있다면 조각에는 데이비드 스미스가 있다고 해야 하나.Portrait of Smith by an unknown photographer데이비드 스미스(David Smith)는 피카소, 홀리오 곤잘레스(Julio Gonzalez)에 뒤이어 직접 금속 조각(direct-metal sculpture), 즉 금속을 직접 절단, 용접하여 형상을 제작하는 조각에 30년대말부터 몰두하여..추천 -
[비공개]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
한국 사진이론의 지형김승곤 외 지음, 홍디자인출판부, 2000년몇 개의 논문은 읽을 만하다. 가령 최인진의 같은 논문은 이런 논문집이 아니곤 읽을 일이 거의 없다. 특히 3부에 실린 세 편의 논문, 이경률의 , 박주석의 , 최봉림의 는 무척 흥미롭게 읽었다.그러나 대체로 재미없었다. 논문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김승곤 선생 회갑 기념 논문집'이라는 부제에 어울리지 않게 신변잡기적인 에세이가 실려 있기도 했다. 책의 출간년도가 2000년여서 그런 걸까, 아니면 한국의 사진 비평이나 이론의 수준이 딱 이 정도 수준이라는 걸까.한국 사진 이론의 변천을 전문적으로 다루지도 못하고 그 때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이들에게서 글을 받아 모은, 그냥 진짜 '기념 논문집'인 셈이다.그럼에도 이 책을 구입한 이유가 있었는데, 어느 전시 평문에서어떤 ..추천 -
[비공개] 슬퍼하는 아테나Mourning Athena와 나이가 든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 하나 그 모습을 드러낸다. 비밀스러운 속살이라기 보다는 굳이 알 필요 없는 구차함에 가깝다.인과율의 노예라서 '왜 이렇게 살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한 이유나 배경으로 끼워 맞출 수 있다는 것 이외에 쓸모없는 것들이긴 하지만, 그런 것들이 쌓이면 이 세상이나 우리 삶은 참 슬픈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인다. 아마 하우저가 그리스 고전주의 정점을 'The Contemplating Athena'로 여기게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게다.부연하자면, 알기 때문에 피하게 되고 알기 때문에 멀리하게 되며 알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게 된다. 알기 때문에, 결국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회한과 눈물의 밤을 보내고 젊음을 부러워하고 되돌릴 수 없는 추억에 자신의 마음을 맡기게 된다.자기 반성은 불필요한 일이다. 세상은 자기를 반성하는..추천 -
[비공개] 비 내리는 날의 녹턴
이렇게 비 올 땐 쇼팽이구나.쇼팽의 녹턴만 들으면 왜 고등학교 때 가끔 주말마다 가던 창원 도립 도서관 생각이 나는지 몰라.노오란 색인표를 뒤져가며 책을 찾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혼자 온 나를 사이에 두고 앞서 책을 빌리던 아저씨는 무슨 책을 빌렸나 뒤에 빌린 그 소녀는 무슨 책을 빌렸나 궁금해 했지.아무 말 없이 서서 물끄러미 창 밖을 보며 아주 잠시 내 미래를 생각했어.그 옆을 지키던 네모난 색인표를 넣어두던 서랍장과 책들 사이로 지나는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들 사이로 계단이 이어지고해가 살짝 기울어, 도서관 앞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할 때쯤 나들이 나선 여학생들의 깔깔거리던 소리들과 ...지금도 그 자리에, 그 도립도서관은 그대로 있을려나.내가 타고 다니던 그 시내버스도 그대로 있을려나.그렇게 내가 짝사랑하..추천 -
[비공개]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지식인의 표상 Representations of the Intellectual에드워드 사이드(지음), 최유준(옮김), 마티사진 출처 -http://www.h-alter.org/vijesti/remembering-edward-said나이가 들어 새삼스럽게 애정을 표하게 되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 한 명이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다. 대학 시절, 을 읽었으나, 그 땐 그 책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인문학은나이와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되는데, 그건 이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에 대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서야새삼스럽게 에드워드 사이드를 읽으며 감탄하게 되고 당연한 일.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에드워드 사이드는, 어쩌면 그의 인생 전체가 20세기의 거대한 갈등 한 가운데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의 지적 역량과 방대함일 것이다. 아마 서구 지식인들 대부분이 에드워드 사이드 앞에서 부끄..추천 -
[비공개] 유현경, <은주>
은주유현경, oil on canvas180*140cm, 2017출처: http://www.mu-um.com/?mid=02&act=dtl&idx=23703화가와 모델은 마주 보는 거울처럼 각자 서로의 모습을 비추거나 튕겨내면서 시시각각으로 어떤 예기치 못한 장면들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두 시선이 팽팽하게 밀고 당기는 힘이 균형점에 도달할 무렵, 작품의 의미가 완성된다.'은주'라는 작품도 그런 과정을 통해 구성해낸 결과물이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작가는 막막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모델은 아무 것도 후련하게 내보이지 않았고, 화가는 뭘 포착해야 할 지 몰라 미로 속을 헤맸다.- 이주은, , 중앙일보 2018년 3월 3일이주은의 글을 보고 작품이 무척 궁금했다. 일요일 오전 메모해둔 노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작품을 찾아보았다. 작가의 말대로 작품은 어딘가 막막하고 답답해 보였지만, 그건 작가가 아..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