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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여름휴가
고대의 유적이란, 비-현실적이다. 마치 만화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서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일상 속으로 들어오지만, 기억에 남지 않고 현실과는 무관하거나 반-현실적이다. 가야 시대의 고분 위로 나무 하나 없는 모습을 보면서 관리된다는 느낌보다는, 신기하게도 나무 한 그루 없구나, 원래 묘 위엔 나무가 자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다. 생각은 논리와 경험을 비껴나간다. 그 당시인구수를 헤아려보며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 몇 명의 사람들이 며칠 동안 일을 했을까 생각했지만, 이 역시 현실적이지 못했다.자고로 현실은 돈과 직결된 것만 의미할 뿐, 나머지는 무의미했다.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을 20대 때 알았더라면, 나는 돈벌기에 집중했을 텐데, 그러질 못했다. 이 점에서 진화심리학이나 행동경제학은 우리..추천 -
[비공개] 벨앤세바스티안의 사랑
벨앤세바스티안... the boy with the arab strap. ... 그들의 신보 나오는 것도 신경쓰지 못할만큼 늙었다. 둔해졌다. 흘렀다. 조용해졌고 약해졌다. 뜸해졌고 사라졌다. 그들의 목소리는, 기타소리는, 드럼소리는, 시디 음반 안에서 시간 정지 중이었는데... 나는, 그는, 그녀는, 우리는 한 번 마주쳤던 따스한 눈길을 두 번 다시 마주하지 못했고 그녀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 사랑도 식상해지기 마련인 어느 7월 여름밤... 문득 시디 속에 갇혀있던 사랑이 떠오른다.추천 -
[비공개]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 다나카 준
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다나카 준(지음), 김정복(옮김), 휴머니스트일본인 저자가 쓴아비 바르부르크(Aby Warburg) 평전이라니! 놀랍기만 했다. 더구나 꼼꼼한 연구서의 면모까지 지닌 이 책은 아비 부르부르크 생애 뿐만 아니라 주요 연구 성과, 그것에 대한 평가, 그리고 '미술사 연구'의 시작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하지만 이 두서없는 리뷰를 양해해주길 바란다. 다나카 준의 꼼꼼한 서술을 따라 읽기에 시간적 여유가 없었고 겨우 다 읽은 후 쓰는 이 리뷰는 바르부르크의 주된 테마를 언급하는 데 그칠 것이고, 이 소개가 비전공자에겐 다소 재미없고 전문적이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 책은 전문 서적이다.인문학의 꽃은 철학이 아니라 역사학이며, 역사학 중에서도 미술사학이 가지는 흥미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추천 -
[비공개] 내 베개. 몽테뉴.
내 베개. 몽테뉴. 그를 베고 누울 때면 계몽주의의 슬픈 결말이, 현대의 지나친 오해가, 한 번 실현된 적 없는 계몽적 이성의 기획이 떠오른다. 아무도 몽테뉴를 읽지 않은 반도의 여름 속에서, 그 누구도 찾지 않는 마음의 감옥 속에서, 몽테뉴를 베고 가끔 노래를 부른다. 잊혀진 계절을.추천 -
[비공개] 패스트푸드 저녁
야근을 할 때면, 혼자 나가 햄버거를 먹고 프로젝트 사무실로 돌아온다. 재미없는 일상이다. 근사하지 않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는 보이지 않는 스트레스가 많고 긴장을 풀 수 없다. 잘못 끼워진 나사 하나가 전체 프로젝트를 뒤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나는 왜 여기에...퇴근길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요즘은 ... 조용한 단골 술집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하지만 조용하면 장사가 되지 않는 것이니, 다소 시끄러워도 혼자 가서 술 한 잔 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 가끔 바Bar같은 곳을 들리지만, 벌이가 시원찮은 샐러리맨이 가서 맥주 한 두 병 마시기엔 눈치 보이는 곳이다.그리고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아직 해가 지지 않은 퇴근길. 나에게도 다시 ..추천 -
[비공개] 피로사회, 한병철
피로사회한병철(지음), 김태환(옮김), 문학과지성사베스트셀러가 된 철학책을 읽었다. 한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후 독일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현재 베를린 예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한병철의 . 몇 해 전 이 책으로 떠들썩할 때, 나는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책의 내용보다는 마케팅의 힘이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초 집 근처 구립도서관 서가에 새로 들어온 책 서가에 한병철 교수의 몇 페이지를 읽고 난 다음, 바로 그의 책 세 권을 주문하고야 말았다. 그만큼 인상적이고 놀라웠다고 할까.단정적인 논조였지만, 일관성이 있었고 나에겐매우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실은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고 해야 할까.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Leistungsgesellschaft로 변모했다. 이 사회의 주민도 더 이상 "복종..추천 -
[비공개] 내 사랑 너를 위해
사랑이라는 건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으니, 내 산 새며, 내 산 꽃이며, 내가 산 사슬도 보지 못했지. 그리고 너는 나를 영영 만나지 않았지. ... 진짜는 어렵다. 그게 사랑이든, 문학이든, 삶이든.추천 -
[비공개] 늦봄과 초여름 사이의 어느 밤
퇴근 후 이런저런 고민에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잠은 오지 않고... 그는 원두커피 원액이다. 차가운 물에 그를 섞어...서... 그녀같은 얼음을 넣어 마셨다. 추운 초여름 밤인가, 아니면 쓸쓸한 늦봄 밤인가. 바람 한 점 없는 도시에 내 마음만 바람으로 가득하다.추천 -
[비공개] 맥베스, 5막 5장. She should have died herea..
She should have died hereafter;There would have been a time for such a word.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Signifying nothing.- 셰익스피어, , 5막 5장 중에서. 맥베스의 독백.추천 -
[비공개] 물, 프랑시스 퐁주
물프랑시스 퐁주 나보다 더 낮게, 언제나 나보다 더 낮게 물이 있다. 언제나 나는 눈을 내리깔아야 물을 본다. 땅바닥처럼, 땅바닥의 한 부분처럼, 땅바닥의 변형처럼. 물은 희고 반짝이며, 형태 없고 신선하며, 수동적이라못 버리는 한 가지 아집이라면 그것은 중력. 그 아집 못버려 온갖 비상수단 다 쓰니 감아 돌고 꿰뚫고 잠식하고침투한다. 그 내면에서도 그 아집은 또한 작용하여 물은 끊임없이무너지고, 순간순간 제 형상을 버리고, 오직 바라는 것은저자세, 오체투지의 수도사들처럼 시체가 다 되어 땅바닥에 배를 깔고 넙죽이 엎드린다. 언제나 더 낮게, 이것이물의 좌우명. '향상(向上)'의 반대.(역: 김화영)서가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오랜만에 읽는 이름. 프랑시스 퐁주. 물에 대한 시다. 물은 정말 그렇다. 그렇구나.(6월 10일. 어딘가에서)하지만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