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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바꿀 수 없는 즐거움
10년 전에 읽었던 다산 산문집을 펼쳐 들었다. 밑줄이 쳐진 장들만 골라 다시 읽었다. 조만간에 여유당 답사를 갈 계획이라 마음의 준비를 해 둔 셈이다. 족히 열 번은 넘게 방문했을 여유당이지만 갈 때마다 감상(感想)이 조금씩 깊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가장 먼저 읽은 글은 유명한 였다. 둘째 형님 약전과 함께 ‘만연사’라는 절에서 서책을 읽었던 일화를 기록한 짧은 글이다. 전라도 화순의 그 만연사(萬淵寺)이고 동림사는 절의 동쪽에 위치한 “중이 수도하는 집”이었다. 다산은 동림사에서의 일상부터 전한다. “둘째 형님은 『상서』를 읽었고 나는 『맹자』를 읽었다. 이곳에 올 때는 첫 눈이 가루처럼 뿌리고 산골 물은 얼어붙을 하였다. 산의 나무와 대나무의 빛도 모두 새파랗게 추워서 움츠린 것 같았다. 아침저녁으로 거닐면 정신이 ..추천 -
[비공개] 아무래도 중한 병이다
몽유병 환자처럼 새벽에 깨어나 인터넷 서점을 돌아다녔다. 이런저런 책들을 구경했다. 괴테와 카프카가 이리 오라 손짓했고 나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니얼 퍼거슨의 이야기에 한참동안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훌쩍 세 시간이 지났다. 그새 십오만 원이 사라졌다. 지갑을 홀라당 다 털리기 전에 별안간 뛰쳐나오면서 생각했다. 누가 범인이지? 서점일까, 시간일까 아니면 지름신일까? 더 이상 캐묻지 않고(소크라테스 선생의 양해도 구하며) 다짐과 설렘을 즐기련다. ‘3월엔 열심히 읽어야지!’ 이것이 '나'라는 사람의 삶인가 보다. 환자처럼 책을 구입하고 멀쩡한 듯 합리화하고 다짐을 난무하는 비이성적인 일상! 그나저나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사태 파악을 못한 채로(아니면 제대로 파악해서인지) 나는 지금 배시시 웃고 있다. 아무래도 중..추천 -
[비공개] 따뜻한 맛의 초콜릿이라니!
일단의 외국인들이 웅성거리며 방향을 찾고 있었다. 일행 중 절반 이상은 ‘IOC’라는 영문이 새겨진 가방을 메고 있었다. ‘선수단 일행들인가? 선수들도 있는 걸까?’ 한 명의 눈이 나와 마주쳤다. 그녀는 손에 서울 지도를 들고 있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두어 마디가 오갔다. 그들은 지하철 서울역을 찾고 있었다. 시청역으로 가려고 했다. 마침 지하철로 향하던 길이라 내가 앞장 서 걸으며 안내했다. 그녀가 내 곁에 섰다. 뭔가를 묻고 싶은 눈치였거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내가 잘 생겨서는 아닐 테고.) 나는 이들의 여정이 궁금했다. “최종 목적지가 어디세요?” 나의 물음에 그녀는 지도에 표시된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경희궁이었다. 시청역에서 걸어갈 거란다. 시청역에서 경희궁까지 걷기엔 어중간한 거리였다. 그렇다고 서울..추천 -
[비공개] 어려운 과제가 필요한 때
- 브루노 아르파이아, 정병선 역, 『역사의 천사』, p.187 * 책을 뒤적였다. 지난해 말, 엄청난 위로와 공감을 안긴 책이었다. 원하는 구절을 찾는 데에는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내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지금 필요로 하는, 그래서 찾으려고 하는 덕목들이 이 책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인내, 몰입, 아모르 파티 같은 덕목들! '원래 찾고자 하던 구절은 151쪽에 있지만, 오늘은 저 구절도 좋구나!'추천 -
[비공개] 책장을 산만하게 넘길 때
5시. 아늑한 실내. 창문 밖 서쪽 하늘의 석양. 흩날리는 진눈깨비.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재즈. 그리고 한 권의 책! 이 정도면 짜릿한 독서가 이뤄져야 했으리라. 독서의 즐거움에 풍덩 뛰어들어 ‘아, 내 사랑 책이여’ 라고 흥겨워했어야 했다. 예상은 종종 빗나가기 마련이고 완벽한 상황에서의 결과도 때론 시원찮은 법! 나는 십오 분 만에 손에서 책을 내려놓았다. 눈동자와 주의력이 동행하지 않았던 것이다. 눈은 문자를 읽는데 머리가 따로 놀았다. 억지 독서는 억지로 먹는 음식만큼이나 맛없다. 부실한 독서의 원인은 둘 중 하나일 터! 책이 시시하거나 독자가 산만했거나. 이번엔 완벽하게 독자 탓이다. 지구상에 시시한 책은 무지막지하게 많지만 내 손에 든 책은 독보적인 명저다. (저자가 몽테뉴 급이라고만 밝힌다.) 게다가 이 책의 앞..추천 -
[비공개] 사다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사다리가 필요한 이들에게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종인 역, The Saviors of God(카잔차키스 전집 『향연 외』에 수록) 1.강력한 책이다. 사유의 깊이와 너비가 비범하기에 그렇다. 감히 선언하자면, 향상심이 강하고 자기 성장을 위해 실제적인 고민과 노력을 해 온 이들에겐 위로와 자극 그리고 달려갈 푯대를 선사하리라. 부연 설명 없이 선언과 명제만 나열되어 있기에 모호하게 읽힐 대목이 많지만, 두어 번 읽어도 이해되지 않을 만큼 난해하진 않다. 내겐 곱씹어 새길 문장이 한 둘이 아니었다. 거듭하여 읽고 싶은 책이 됐다. 사실 두 번째로 읽는 중인데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다시 읽고 싶은 책이 아니라면 대체 한 번은 읽을 필요가 무어란 말인가! 2. 는 카잔차키스(1983~1957)가 1923년에 쓴 책이다. 작가 자신을 위한 책이다. 마흔이 된 카잔차키스는 ..추천 -
[비공개] 구정이든 어느 봄날이든
아침에 을 여러 번 감상했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영화배우 폴 워커를 추모하는 곡이다. 이미 수없이 들었던 노래다. 친구가 그리울 때면 하염없이 듣곤 했다. 가사가 마음을 어루만지면 나는 시공간을 떠난다. 추억에 잠기고, 때론 상상에 빠진다. ‘한 번만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하는 유의 이뤄질 수 없는 상상.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어떤 날엔 뮤직비디오를 시청한다. 마지막 장면이 감동과 위로 그리고 슬픔과 아픔을 안긴다. (때론 마음도 손에 박힌 가시처럼 아프다.) 자신의 승용차에 앉은 두 친구! 따스한 눈빛을 교환하고 주행을 시작한다. 도로는 갈라지고 두 대의 승용차도 다른 길로 들어선다. 카메라는 이제 하나의 승용차만을 쫓아가면서 서서히 줌 아웃된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창가에 섰다. 창밖을 바라보고 싶어서가 아..추천 -
[비공개] 우아한 선동이 더 강렬하다
[서평] 우아한 선동이 더 강렬하다앙투안 콩파뇽 『인생의 맛』 Antoine Compagnon, Un Ete Avec Montaigue 1.이리도 품격 있는 선동이라니! 몽테뉴의 삶과 사상을 40개의 에세이로 풀어낸 책 『인생의 맛』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의 ‘최종적이고 유일한 목표’가 독자들을 몽테뉴의 세계로 초대하는 것이라고 썼다. 1592년에 사망한 몽테뉴는 에세이의 원형인 『수상록』을 남겼다. (인문주의와 개인주의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르네상스 문학을 대표하는 저술이다. 책을 읽으면서 『수상록』을 펼치고 싶었던 순간이 도대체 몇 번일까! 마흔 번에 가까웠으리라. 모든 글을 읽을 때마다 몽테뉴가 궁금해진 셈이다. (수년 전 ‘몽테뉴 스터디’도 했기에 전혀 모르진 않지만 더 깊이 알고 싶은 것이다.) 며칠 전에 『인생의 맛』을 지인에게 추천했는데, ..추천 -
[비공개] 새해 첫 날에 품은 소망
새해 앞에 섰다. 방금 떠오른 2018년 첫 번째 태양을 바라본다. 설렌다. 오늘을 기다린 건 아닌데 반갑기도 하다. 태양이 세상의 동쪽을 비춘다. 건물은 해바라기가 된 마냥 햇빛을 받아 밝아졌다. 나는 환한 마음으로 노트에 새해 소망을 적는다. 하나씩 이뤄갈 때마다 명랑해질 내 인생을 생각하며. ‘2018년은 정말 환상적인 해로 살아보자!’ 출간. 탈고. 외 한 권번역. 독서. 수잔 손택 全作,『수상록』『포커스』공부. 인지과학, 예술이론(미진사) 여행. 포틀랜드, 펠로폰네소스(그리스), 제주와우. 와인시음회, STORY 매뉴얼, 유니컨 디너공간. 아카이브 인테리어 작업, 중고물품 판매행동. 인터뷰, 팟캐스트, 특강관계. 가족여행, 블로그 독자의 밤, 와우수업 하루를 잘 살았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한 해를 계획했다. 가족이랑 통화하고 여느 때보..추천 -
[비공개] 연말에 매만지는 일곱 단어
시간, 두 손 안에 붙잡아 두었는데속절없이 빠져나간 한 줌의 모래 새해 계획, 다시 수립할 필요 없이 뚝딱 복사(Ctrl+V)하는 언짢은 놀이 모임만나면 정교해지는 기하학적 필연이거나만나도 허전한 우연을 쫓는 기이함이거나 은인막차가 떠났나, 새벽녘 을지로의 물음을하나 둘 챙겨 올리는 진짜 막차의 휴머니즘 나이 한 주 한 주 꾸준하더니 시나브로 550회을 보던 이의 탄식, 언제 이렇게… 꿈, 빈둥거리고 기웃거리다 꺼뜨렸던12월이면 밝아지는 마음속 불빛 희망우리의 열망이 곧 우리의 가능성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에 주억거리는, 회의를 머금은 전율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