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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광복 70 주년 8.15 특집]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근 ..
나. 범(凡)아시아 평화세력 연대의 필요성 (1) ‘이일민제왜론’의 활용 우선 그 방법론으로, 일본 내부의 대다수 일본민으로부터 일본 내 극우주의자를 ‘분리’, ‘고립화’시키는 것이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즉 일본 ‘신(新)왜구주의’를 막는 일본 내 내부 조건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본 내부의 평화 세력을 활용하는 ‘이일민제왜론(以日民制倭論)’은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과거 제국주의 시기 군부에 의해 자신들의 자식을 갖다 바쳐야 하는 상황 및 그 피해에 대한 재인식을 심어줌으로써 아베와 같은 극우주의에 대항할 세력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의 민간단체들은 국제 지원 및 연대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한·일 관계를 따지면, 독도 만행을 일삼는 자들에게나 이목이 집중되어 있지, 이들의 행동을 ..추천 -
[비공개] [광복 70 주년 8.15 특집] 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근..
최근 일본 극우주의 경향과 안중근 의사 의 현재적 의미와 실천적 과제 가. 안중근 의사의 동화평화론 개괄과 의미 잘 알다시피, 안중근 의사는 이토를 저격한 후 러시아 경찰에 의해 일경에 넘겨져 여순으로 끌려와 재판을 받고 순국하기 1주일 전부터 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이 논문의 서와, 전감의 일부만 끝내고 현상, 복선, 문답은 탈고를 하지 못한 채 안의사는 일제가 약속을 어기고 사형을 집행하자 순국하게 된다. 이 동양평화론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서양의 침략과 수탈의 국제 정세 속에서 동양제국이 생존권을 보존키 위해 공동 대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것이다. 안의사는 서문에서 동양평화를 위한 의로운 전쟁을 하얼빈에서 거행하고 동양평화 문제에 대한 의견을 제출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전감에서는 (1)..추천 -
[비공개] [광복 70 주년 8.15 특집] 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
다. 한반도 지속 전장(戰場)설 오랜 역사상 일본의 한반도 침입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소규모로 진행되다가는 끝내 전면전으로 발전되는 일정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패턴의 불변성은 침구 흐름을 예측케 한다는 점에서 왜구의 침구에는 뚜렷한 법칙이 있다. 즉 일본 침략에는 한·일 간 및 양국을 뛰어 넘는 국제관계의 상수와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더 긴박하고 구체적으로 일본의 침략이 전개된다면, 여러 가변 요인과 상대적 요인이 작용해 전란을 더욱 부채질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사적으로 일본에 의한 한반도 전장(戰場)설을 살펴보면, 임진왜란,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전쟁 등 일본에 의한, 또는 일본의 침략의 후과로 인한 전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며 한반도가 지속적으로 전장화(戰..추천 -
[비공개] [광복 70 주년 8.15 특집] 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근..
나. 침략 논리의 전개과정과 영구황토화 계획설 일본은 유사 이래 주변국과들과 어떤 식으로든 침구를 통해 갈등을 빚어왔다. 그 갈등은 단기적으로는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불행으로 종결되고 마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지금 일본이 각국과 벌이는 영토 분쟁의 본질도 팽창주의적 ‘갈등 국면’을 지속시키려는 술책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일본이 달라지지 않고는 분쟁 국면이 바뀌기를 바라는 것은 난망하다. 근대 일본의 조선 침략과 병탄은 물리력과 침략 사상 면에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유산을 물려받은 ‘근대 왜구’들의 준동으로 일어난 도발이었다. 일본 명치 정부 시기 한반도 침탈을 꾀한 일본이 내세운 ‘정한론(征韓論)’의 배경도 연원을 따지고 보면 토요토미의 침략성과 연결된다. 일본 ..추천 -
[비공개] [광복 70 주년 8.15 특집] 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근..
일본 침략의 역사와 주요 가해 논리 가. 일본의 한반도 주기 침략설과 재침론 고대로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일본이 한반도를 지속적으로 침구해 온 것은 불변의 사실이다. 일본의 침략주의는 과거사에 국한되지 않고 오늘날 우리 삶과 운명에 지대한 영향 미치는 구체적 현재성을 띠고 있다. ‘독도 문제’는 바로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역사적으로 지속되어 온 침략 행위를 과연 일본은 멈출 수 있을 것인가? 불행하게도 금세기 내 일본의 침략 근성이 사라지거나 약화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2차대전 패망 후 1백년을 앞두고 있는 지금 더 강화되고 있다. 단언컨대, 일본 열도가 존재하는 한, 침략의 근성을 포기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의 궤도는 과거의 궤적에서 크게 이탈되지 않는다. 일본이 일으킨 동아시아..추천 -
[비공개] [광복 70 주년 8.15 특집] 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근..
본 고는 내가 지난 달라는 제법 긴 제목을 갖고 발표한 글을 전재한 것이다. 일본 극우주의의 팽배와 국내 친일세력의 부왜적(附倭) 성향이 강화되는 시기, 8.15 특집으로 본 인문경영연구소에서는 일본 정한론자들의 역사적 전개과정, 주장및연혁과, 그에 맞서 투쟁한 사상가이자, 20세기초 지구상 가장선구적인 반제국주의 투쟁을 표방한 인물로 실천하는 평화주의자였던 안중근 의사의 이 지닌 숙제를되새겨 보고자 한다. 원고는 몇 회에 걸쳐 분재한다. 일본 정한론(征韓論) 배경과 안중근 의 실천적 의미 - 일본의 재(再)군사화를 기미(羈靡)하는 동아시아국가 연대 방안을 제안하며- 전경일 인문경영연구소장 서언: 한·일관계사와 일본의 침략 역사 역사는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실천적 교훈을 얻는다. 일시적 분(憤)에 사로잡히거나, 상대..추천 -
[비공개]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세계제국 ‘원’의 침공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세계제국 ‘원’의 침공이처럼 왜구를 무한 복제해 내는 일본 내 속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왜구가 우리나라에 대거 침구한 때는 일본의 가마쿠라 막부시대와 남북조시대였다. 일본 중세에 해당되는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불안정했다. 가마쿠라에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는 1185년 헤이시가(平氏家)를 멸하고 전국적인 지배망을 구축하게 된다. 이때 막부는 ‘수호와 지두(地頭)의 제(制)’를 실시한다. 수호(守護)란 모반, 살인자 등을 관장하는 관리를 뜻하고, 지두란 장원의 관리, 조세의 징수, 치안의 유지를 맡아 보는 직책을 말한다. 이는 미나모토노가 내란에 참가한 무사 계급을 주종 관계로 묶어 지배 질서를 확립한 것을 뜻한다. 그러다가 그가 죽자 정권은 처가 쪽인 호조씨(北條氏)에게로 넘어간다. 호조씨 또..추천 -
[비공개]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2)
지금 일본은 2차 대전 이래 가장 뜨거운 극우주의 열기로 들끓는 가마솥과 같다. 경제 성장이 가져온 경제대국화와 일본 내 경제적 불안정성과 잦은 자연재해, 그리고 잇따른 인재(人災)는 이 가마솥이 폭발의 행로를 찾아 새로운 팽창주의로 방향을 틀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같은 팽창 기조를 일본은 1823년 사토 노부히로가 제안했던 ‘울릉도·독도 공략책’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독도문제의 역사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구와 근대 일본의 군국주의, 지금의 일본 극우주의자들이 서로 빈틈없이 맞아 떨어지고 있다. 우리가 왜구를 다루는 것은 일본의 침구가 끝내 일본은 물론 주변 국가 모두의 불행이 되어 온 역사적 경험 때문이다. 나아가 이 일이 단지 과거의 불행으로 국한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심각하게 작용하기 때문..추천 -
[비공개]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1)
‘일본발(發) 왜구’의 발호-조큐의 난(1)⟨광개토태왕비문⟩에 새겨진 명문(銘文) 이후, ‘왜구’가 처음으로 사료에 등장하는 것은 1152년이다. 일본 측 자료인《청방문서(靑方文書)》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고려를 대상으로 해적활동을 한 집단에 대한 최초의 증빙이 엿보인다. 일본 규슈 나가사키현(長崎縣)의 서쪽에 위치한 고토(五島)의 장관격인 지두(地頭) 기요하라 고레카네(淸源是包)가 고려 선박을 탈취한 혐의로 영주로부터 예소직(預所職)을 박탈당했다는 기록이다. 이 기록은 왜구가《고려사》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와 대략 70여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해상 무사단’의 활동 지역이 일본열도 내 바다를 넘어 멀리 고려 선박을 대상으로 약탈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이는 왜구가 어떻게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가..추천 -
[비공개]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
왜구, 그 질긴 악연의 시작왜(倭)의 성장으로 한중일 간에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양태가 벌어졌다. 바다를 무대로 한중일 삼국은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게 된다. 삼국이 처음으로 만나는 지점은 유동성이 가장 큰 바다였고, 바다는 ‘예측 불허의 수단’과 ‘무력’에 의해 자기의 욕구를 드러내는 장소로 가장 적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각국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본질과 성향을 드러내게 되는데, 섬에서 대륙으로 별로 전해 줄 게 없었던 일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왜구(倭寇)’라는 카드를 내밀게 된다. ‘왜구(倭寇)’는 이런 배경과 방식으로 한중일 역사 무대에 전격 등장하게 된다. 우리나라 기록에 ‘왜(倭)’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삼국사기》신라본기 혁거세조이다. 왜구에 대한 기록은 그 뒤에도 끊이질 않는다. 그러다가 ‘왜구..추천